종헌·종법을 넘어 율장 건도와 갈마법의 승가적 전통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
한국불교에서 대한불교조계종이 차지하는 위상은 매우 크다. 조계종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최대 종단 가운데 하나이며, 수행·교육·포교·문화·사회적 활동에 이르기까지 한국불교 전체의 방향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조계종의 총무원장을 누가, 어떠한 원칙과 절차에 따라 선출하느냐의 문제는 단순히 한 종단의 행정책임자를 뽑는 내부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불교의 미래와 승가공동체의 운영 원리를 어떻게 세워 갈 것인가?” 라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와 연결된다.
2026년 제38대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가 9월 3일 실시될 예정이다. 조계종은 공식적으로 종헌과 종법에 따른 공정한 선거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범불교적이고 초종파적인 관점에서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불교의 승가 지도자를 선출하는 데 있어서 현대적인 선거제도만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2,600년 불교 승가가 이어온 율장에 의한 건도(승가 운영 규정·공동체 운영 원칙)와 갈마(승가의 공식 의사결정 절차·공동체 합의제도)의 정신을 더욱 적극적으로 계승해야 하는가?”
이 질문은 특정 후보의 당락을 논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오늘날 한국불교가 어떠한 승가공동체를 지향해야 하는가에 대한 원론적인 질문이다.
# 총무원장은 정치적 지도자인가, 승가의 소임자인가
현대 종단에서 총무원장은 막대한 행정적 권한과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다. 종단의 재정과 인사, 교육과 포교, 대사회적 활동 등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불교의 관점에서 총무원장이라는 직책을 단순한 행정기관의 최고책임자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승가의 지도자는 본래 법과 율을 수호하고, 대중의 화합을 이루며, 개인의 명예나 권력보다 불법의 지속을 우선하는 소임자라는 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총무원장 선출에서 가장 먼저 물어야 할 것은 “누가 더 많은 표를 얻을 것인가”가 아니라,
“누가 승가의 화합과 청정성, 수행과 전법, 불법의 지속을 가장 잘 책임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어야 한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구성원의 의사를 확인하는 중요한 제도다. 그러나 승가공동체는 일반적인 정치공동체와 동일하지 않다. 승가는 불법을 중심으로 모인 수행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이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면 종단의 선거가 일반 정치권의 선거와 유사한 세력 경쟁, 조직 경쟁, 이해관계의 대립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
# 율장의 건도는 승가공동체 운영의 제도적 원형이다
불교 승가의 제도적 전통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율장, 특히 건도(犍度, Khandhaka)의 정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건도는 승가의 생활과 의례, 수행공동체의 질서, 계율의 실천 등을 구체적으로 다루는 중요한 율장 전통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승가가 특정 개인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공동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승가는 법과 율을 공동체적으로 확인하고 실천하는 구조를 발전시켰다. 따라서 승가의 중요한 의사결정은 개인의 권위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중의 합의와 정당한 절차를 통해 이루어져야 했다. 이것이 바로 갈마(羯磨, Kamma)의 전통과 연결된다.
# 갈마법의 핵심은 ‘권력’이 아니라 ‘공의’다
갈마는 단순한 회의나 투표를 의미하지 않는다. 갈마의 핵심에는 승가 구성원이 함께 모여 공동체의 중요한 사안을 법과 율에 따라 결정한다는 정신이 있다. 따라서 갈마의 본질은 다수의 힘으로 소수를 누르는 것이 아니라, 승가의 화합을 전제로 한 공동체적 의사결정에 있다.
조계종의 과거 자료에서도 갈마·포살·자자의 전통을 승가공동체의 중요한 유산으로 설명한 사례가 있다. 또한 결계와 포살을 통해 승가 구성원이 공동체적 수행과 공의에 참여하는 전통을 강조한 바 있다. 이 점은 오늘날에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선거에서 승자는 한 사람이고 패자는 다른 사람이 된다. 그러나 승가공동체에서는 선거가 끝난 뒤에도 모두가 함께 수행하고 살아가야 한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승패보다 선거 이후의 화합이다.
# 조계종의 현대적 선거제도와 율장 정신은 대립하는가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현재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는 현대 종단의 종헌·종법과 선거법에 의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율장의 갈마법을 근거로 현행 제도가 곧바로 잘못되었다고 단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현대적 제도 안에 율장과 갈마의 정신을 어떻게 더욱 충실하게 구현할 것인가이다.
실제로 조계종 스스로도 과거 공식 자료에서 “율장 정신”과 “종헌·종법”의 조화를 강조해 왔다. 그러므로 문제는 선거제도를 폐지할 것인가가 아니다.
문제는 선거제도가 과연 승가의 화합과 청정성, 수행과 전법이라는 불교적 목적에 부합하고 있는가? 이것을 끊임없이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 ‘표의 숫자’보다 ‘승가의 공의’를 생각해야 한다
현대 선거제도에서는 표가 가장 명확한 의사결정 수단이다. 그러나 불교의 승가공동체에서는 숫자만으로 공동체의 정당성을 설명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선거 과정에서 지나친 세력화가 발생하고, 특정 문중이나 지역 또는 이해관계에 따라 조직이 양분된다면 법적으로 선출된 지도자라 하더라도 승가공동체의 실질적인 화합을 이루기는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조계종 선거에서는 단순히 “몇 표를 얻었는가”뿐 아니라 다음과 같은 질문도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
수행자로서의 청정성과 품격을 갖추었는가? 종단 구성원의 다양한 의견을 포용할 수 있는가? 승가의 화합을 우선할 수 있는가? 종단의 재정과 행정을 투명하게 운영할 수 있는가? 불교의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는가? 다른 불교 종단과 협력할 수 있는가? 불교의 세계화와 미래세대 포교를 이끌 수 있는가? 이러한 기준이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 범불교적 관점에서 조계종을 바라보아야 한다
조계종은 조계종만의 종단이지만, 동시에 한국불교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는 종단이다. 태고종을 비롯한 여러 불교 전통과 종단들이 한국불교라는 큰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다. 따라서 조계종 총무원장의 역할도 단순히 조계종 내부에 한정될 수 없다. 한국불교의 대사회적 신뢰, 종교 간 대화, 국제불교 교류, 불교문화의 계승, 출가자 감소와 신도 감소에 대한 대응 등은 모든 불교계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다.
특히 오늘날 한국불교가 직면한 가장 큰 과제 가운데 하나는 종단 간 경쟁을 넘어 불교 전체의 공공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총무원장은 ‘조계종의 행정 책임자’를 넘어 한국불교의 공공성과 연대에 기여하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 선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선거 이후’다
불교계에서 선거가 끝나면 다시 수행과 전법의 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선거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이 선거 이후까지 지속된다면 승가공동체의 화합은 훼손된다. 따라서 새로운 총무원장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는 선거에서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과도 함께하는 원융종단을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승자는 모든 것을 차지하는 사람이 아니다. 불교적 지도자는 자신을 반대한 사람까지 포용하여 공동체 전체를 하나로 만드는 사람이어야 한다. 언젠가는 큰 틀에서 한국불교의 모든 종파가 하나가 되는 날이 와야 한다고 본다.
# 갈마의 정신을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방법
그렇다면 갈마법의 정신을 오늘날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첫째, 중요한 종단 정책에 대한 사부대중의 의견수렴을 확대해야 한다. 둘째, 중앙과 교구, 본사와 말사 사이의 의사소통 구조를 강화해야 한다. 셋째, 비구·비구니 승가의 의견이 균형 있게 반영되는 구조를 발전시켜야 한다.
넷째, 재가불자의 의견도 종단의 중요한 공공정책과 포교정책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종단의 재정과 인사 운영을 더욱 투명하게 해야 한다. 여섯째, 선거가 끝난 뒤에도 패자와 지지 세력이 종단의 공적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현대적 민주제도와 전통적인 갈마 정신을 결합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 ‘갈마적 민주주의’를 생각할 때다
오늘날 한국불교는 새로운 승가 운영 모델을 고민해야 한다. 서구적 민주주의의 장점인 참여·투명성·책임성과 불교 승가의 전통인 화합·청정·공의·법과 율의 존중을 결합하는 것이다. 이를 가칭 ‘갈마적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갈마적 민주주의란 단순히 다수결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법과 율을 기준으로 하고, 공동체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며, 최종 결정 이후에는 다시 하나의 승가로 돌아가는 의사결정 방식이다. 이러한 모델은 조계종뿐만 아니라 한국불교 전체가 장기적으로 연구해 볼 가치가 있다.
# 총무원장 선출은 한국불교의 미래를 묻는 일이다
이번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를 단순한 종단 내부의 권력 교체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한국불교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계기로 바라보아야 한다.
수행 중심의 불교인가. 전법 중심의 불교인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불교인가. 세계불교와 연대하는 불교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승가공동체 본래의 청정성과 화합을 회복하는 불교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차기 총무원장의 지도철학 속에 담겨야 한다.
# 다시 ‘법과 율’로 돌아가 직선제, 추대제로 발전해야 한다
부처님께서는 특정 개인에게 영원한 권력을 맡기지 않았다. 불교 승가의 지속적인 생명력은 한 사람의 카리스마가 아니라 법과 율, 그리고 공동체의 화합에 있었다. 오늘날 조계종의 총무원장 선출 역시 이러한 근본정신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종헌과 종법은 현대 종단을 운영하는 중요한 제도적 장치다. 그러나 그 제도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곳에는 부처님의 법과 율, 그리고 승가공동체의 화합 정신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이제 한국불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진지하게 던져야 한다. “우리는 총무원장을 뽑는 것인가, 아니면 승가공동체의 소임자를 세우는 것인가?”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는, “선거에서 이기는 지도자가 아니라, 승가를 화합시키고 불법을 수호하며 한국불교 전체를 위해 봉사하는 지도자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이번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를 바라보는 범불교적·초종파적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다.
조계종이 한국불교에서 차지하는 영향력이 큰 만큼, 그 지도자 선출 과정 역시 한국불교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 표는 선거를 끝낼 수 있지만, 화합은 승가를 지속시킨다. 그리고 그 화합의 뿌리에는 2,600년 불교 승가가 이어온 율장과 갈마의 정신이 있다.
이제 한국불교는 그 오래된 지혜를 현대의 종단 운영 속에서 어떻게 되살릴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결론적으로, 한국불교의 미래는 종단과 종파의 경계를 넘어 범불교 초종파적 연대와 승가의 통합을 지향해야 한다. 특히 한국불교에서 큰 영향력을 지닌 조계종은 총무원장 선출에서도 단순한 경쟁적 선거를 넘어 직선제 또는 추대제와 같은 폭넓은 승가 참여 방식을 모색함으로써, 승가의 화합과 공동체적 합의를 강화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이는 특정 종단의 권력 확대가 아니라 한국불교 전체의 승가통일과 공동체적 발전을 이루기 위한 방향이어야 한다.
글·사진=보검스님 ㅣ 세계불교 네트워크 코리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