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절에 오는 신도들에게 불전함에 돈 넣으라는 소리를 한 번도 안 했어요. 10원짜리 하나 안 넣어도 괜찮아요. 자기들이 알아서 하면 되는 거지, 억지로 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금정사 주지 법안스님에게 사찰은 누구나 부담 없이 찾아와 기도하고 쉬어갈 수 있는 곳이다. 시주를 얼마나 하는지, 얼마나 자주 법회에 참석하는지보다 부처님과 인연을 맺고 마음을 닦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법안스님은 도심 사찰의 역할을 설명하면서도 거창한 포교 방법을 내세우지 않았다. 바쁜 일상에 쫓기는 사람들이 잠시 들러 부처님께 기도하고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18일 금정사에서 만난 스님은 소탈했다. 오랜 수행 생활과 다양한 경험을 들려주면서도 자신의 삶을 특별하게 포장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출가한 이야기부터 세속 생활을 경험했던 시간, 약초를 다루게 된 인연까지 담담하게 풀어냈다.
어머니 손에 이끌려 열두 살에 맺은 불연
법안스님이 불문에 들어선 것은 열두 살 때였다.
어린 시절 몸이 몹시 약했던 스님은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전남 영광의 한 암자에 들어갔다. 병약한 아들이 건강을 되찾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에서 시작된 불연이었다.
"어릴 때 많이 아팠어요. 죽는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어머니가 나를 절에 맡긴 거죠. 그런데 그때부터 몸이 괜찮아졌어요."
스님은 당시의 기억을 담담하게 회상했다. 어린 나이에 머리를 깎고 절집 생활을 시작했지만, 처음부터 수행자의 삶을 온전히 이해했던 것은 아니었다.
"어린애가 뭘 알았겠어요. 맨날 돌아다니고 말썽도 많이 부렸죠."
출가 이후의 삶이 줄곧 평탄했던 것도 아니다. 한때는 절을 떠나 약 3년 동안 세상살이를 경험하기도 했다. 이후 다시 불문으로 돌아와 여러 사찰을 오가며 수행을 이어갔다.
스님은 그 시간을 특별한 방황이나 깨달음의 과정으로 포장하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시작한 절집 생활이었기에 시행착오도 있었고, 세상과 부딪치며 배운 것도 많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출가 인연은 일흔을 넘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약사여래와의 인연…아픈 사람을 살피는 수행
법안스님의 수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약사신앙이다.
어린 시절 병약한 몸으로 절에 들어갔던 스님은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약사여래를 모신 도량에서 다른 사람들의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고 있다.
스님은 약사도량의 의미를 묻자 짧게 답했다.
"아픈 사람들을 위해서 하는 거죠. 여기가 약사도량이니까요."
법안스님은 기도와 함께 약초와 전통적인 건강관리 방법에도 오랫동안 관심을 기울여 왔다. 여러 종류의 약재를 익히고 직접 손질하며 달이는 일도 이어왔다.
약재를 다루는 데에도 나름의 원칙이 있다고 했다.
"기성품처럼 똑같이 만드는 게 아니에요. 사람마다 몸 상태가 다르니까 그걸 살펴서 약을 짓는 거죠."
스님은 약재마다 쓰임이 다르고 배합도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자신이 오랫동안 익혀온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상태를 살핀다는 것이다.
이러한 활동과 관련해 스님은 지난 9월 사단법인 국제문화예술명인명장회로부터 자연치유 분야 명인 인증도 받았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예전처럼 많은 일을 하기는 어려워졌다고 했다. 사용하던 기계 일부를 정리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이제 나이가 일흔이 넘으니까 힘이 부쳐요. 기계도 많이 정리했어요."
스님의 말에는 세월의 무게가 묻어났다. 그래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계속 이어가고 있다.
"도심 사찰은 포교당…편하게 와서 쉬어야죠"
법안스님은 도심 사찰의 역할을 묻자 주저 없이 '포교당'이라고 답했다.
"도심에 있는 작은 절들은 대부분 포교당이라고 봐야죠. 직장 다니는 사람들은 평일에 시간이 없잖아요. 일요일에 와서 편하게 쉬고 기도도 하고 가는 거예요."
스님은 산중 사찰과 도심 사찰이 수행의 본질에서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마음을 닦는 것은 어디에서나 같지만, 도심 사찰은 대중의 생활 가까이에서 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생각은 사찰을 운영하는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법안스님은 신도들에게 시주를 강요하지 않는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시주하라는 소리를 안 해요. 자기들이 하고 싶으면 하는 거고, 안 하면 안 하는 거죠."
사찰 운영에 필요한 비용이 적지 않을 텐데도 스님은 신도들에게 무엇을 요구하기보다 부담 없이 찾아올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신도 수를 묻는 질문에도 특별히 숫자를 내세우지 않았다. 요즘은 어느 사찰이나 신도 확보가 쉽지 않다며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스님에게 중요한 것은 사찰의 외형이나 신도 수보다 사람들과 맺는 인연이었다.
젊은 세대의 불교 관심…새로운 포교의 가능성
대화는 자연스럽게 한국불교의 현실로 이어졌다.
법안스님은 젊은 신도들이 줄어든 현상을 체감하고 있다고 했다. 과거와 비교하면 사찰을 꾸준히 찾는 젊은 사람들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조금씩 달라지는 분위기도 느끼고 있었다.
불교박람회 등을 계기로 젊은 세대가 불교문화에 관심을 갖고 사찰을 새롭게 바라보는 현상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렇다고 젊은 층을 겨냥한 특별한 포교 방법을 마련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특별한 건 없어요. 그냥 편하게 와서 기도하고 쉬었다 가면 되는 거죠."
유튜브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한 포교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스님은 신도들이 인터넷에 사찰 관련 영상과 사진을 올리고 있다고 했다. 직접 운영하는 채널은 아직 없지만 앞으로 마련할 생각도 갖고 있었다.
"세상은 좋아지는데 너무 번잡스러워요.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대한 스님의 솔직한 반응이었다. 새로운 매체가 낯설고 번거롭기는 하지만, 직접 사찰을 찾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법문과 사찰 소식을 전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데는 공감했다.
사극 출연부터 문화예술 활동까지…수행자의 또 다른 모습
법안스님에게는 수행과 약사신앙 외에도 다양한 이력이 있다.
스님은 오랫동안 불화와 서예 작품에 관심을 가져왔고,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여러 사람과 인연을 맺었다.
특히 과거 사극 '천추태후' 등에 출연했던 경험은 뜻밖이었다. 스님은 당시 촬영 장소와 함께했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들려줬다.
최근에도 촬영 제안을 받은 적이 있지만 일정이 맞지 않아 참여하지 못했다고 했다.
오랫동안 소장해온 그림과 글씨 가운데 상당수는 신도들에게 나눠줬다. 지금은 몇 점 남지 않았지만, 작품마다 얽힌 사연은 기억하고 있었다.
스님은 자신의 다양한 활동을 특별히 내세우지 않았다. 사람을 만나고 인연을 맺으며 살아오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 일들이라는 듯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아픈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곳"…법안스님이 지켜온 마음
열두 살에 시작된 출가 생활은 어느덧 수십 년의 세월을 지나왔다.
병약한 몸으로 절에 들어갔던 소년은 여러 사찰을 거치고 세속 생활도 경험한 뒤, 지금은 도심 속 약사도량에서 불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법안스님은 신도들에게 특별한 조건을 내걸지 않는다. 불전함에 돈을 넣지 않아도 괜찮고, 시주를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했다. 그저 편하게 찾아와 기도하고 쉬었다 가면 된다는 것이다.
그 말은 스님이 생각하는 도심 포교의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사람들의 일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나이가 들면서 예전처럼 많은 일을 하기는 어려워졌지만, 스님은 여전히 도량을 돌보고 사람들을 만나며 약사기도를 이어가고 있다.
어린 시절 자신의 아픔을 계기로 맺은 불연이 이제는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살피는 삶으로 이어진 셈이다.
법안스님이 말하는 사찰의 역할도 복잡하지 않았다.
누구나 부담 없이 찾아와 부처님께 기도하고, 잠시 마음을 쉬어갈 수 있는 곳. 스님이 오랜 세월 지켜온 도심 포교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