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0년 한국인 사로잡은 불교 책들

원효대사, 생활사(1948년) 발행(좌)과 광영사 발행(1960년)

도서출판 민족사(대표 윤창화)는 오는 3~6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국제불교박람회에 ‘1950년대부터 2020년까지, 베스트셀러가 된 불교책’ 17종을 전시한다.

민족사는 “한국 출판계에서 불교 서적은 단순한 종교 서적을 넘어 인문, 철학, 문학을 아우르는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하며 꾸준히 사랑받아 왔다. 1950년부터 베스트셀러에 오른 불교책들은 특정 종교인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담아왔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희망을 전하며, 종교를 초월한 공감을 이끌어냈다”고 했다.

# 1950~1970년대: 전쟁의 상흔과 불교적 성찰

한국전쟁 이후 사회는 황폐해졌고, 사람들은 정신적 안식처를 찾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불교 서적들은 역사적 인물과 불교 철학을 통해 인간 본연의 고통을 성찰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춘원 이광수의 <원효대사>(1948)와 김일엽의 <청춘을 불사르고>(1962) 이다.

<원효대사>는 격동의 시대 속에서 불교 철학과 원효의 삶을 재조명하며 대중적인 관심을 끌었다. 근대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이광수(1892~1950)의 장편소설로, 1942년 3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매일신보에 226회 연재된 후, 1948년 생활사에서 2권으로 초판 발행되었다. 1956년 12월 광영사에서 합본 출간한 뒤, 불교 소설 최초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원효대사는 1300여 년 만에 파계승이라는 낙인을 벗고 위대한 고승, 민족 사상가로 재조명되었다.

1960년대에는 김일엽(1896~1971)의 <청춘을 불사르고>가 출간됐다. 불교적 삶을 선택한 후 34년 만인 1962년, 오랜 침묵을 깨고 발표한 자전적 수필집으로 어린 시절, 이성 관계, 결혼과 실패, 그리고 33세에 출가하여 불문에 입문하기까지의 과거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약 12편의 글이 실린 이 책은 출간 5개월 만에 5판을 인쇄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당시로는 경이적인 수치였다.

'무소유' 1979년 2판


# 1970~1990년대: 사회 변혁과 함께 성장한 불교 서적

197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까지 한국 사회는 급격한 경제 성장과 함께 민주화 운동을 경험했다. 1980년대는 불교 출판의 도약기로, 불교를 소재로 한 소설도 충분히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시기였다.

이 시기에는 내면의 갈등과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은 수행, 명상, 무소유 정신을 강조한 불교 서적들이 주목받았으며, 불교 철학을 문학적으로 풀어낸 작품들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법정 스님(1932~2010)의 <무소유>(1976)는 물질적 풍요 속에서 정신적 가치를 고민하던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스님은 종교의 담을 괘념치 않고 그 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사고로 다른 종교 신자들로부터도 많은 호응을 받았다.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메시지는 무소유의 본질을 함축한다. 1976년 초판 출간 이후 2010년 3월까지 86쇄를 기록했으며, 33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2010년 스님 입적 당일에는 1835부, 다음 날 오전 10시까지 894부가 판매됐다.

<무소유> 외에도 <산에는 꽃이 피네>(1998), <오두막 편지>(1999) 등 법정 스님의 책들은 그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

'만다라', 1979년, 표지와 다른 속표지


김성동(1947~2022)의 <만다라>(1979)는 불교적 색채가 짙은 소설로, 인간 존재의 근원적 질문을 던지며 큰 사랑을 받았다. 한국 문단에 보기 드문 '불교소설'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100만부 판매를 기록하며 밀리언셀러 반열에 올랐고, 1981년 임권택 감독의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특히, 속표지에는 보라색 바탕에 이중섭의 그림이 있다.

남지심(1944~ )의 <우담바라>(1988)는 불교 수행과 깨달음의 과정을 서사적으로 녹여내며 독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출판 후 1주일 만에 1만 5천 부가 판매되었고, 총 600만 부 이상 팔리며 불교 문학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고은(1933~)의 <화엄경>(1991)이 있다. 한국 현대 문학의 거장이자 시인인 고은은 불교의 대표 경전인 〈화엄경〉의 맨 마지막 장인 ‘입법계품’, 선재동자가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53명의 선지식을 찾아다니면서 가르침을 청하는 구도 과정을 장편 서사시 형식으로 소설화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종교 서적을 넘어 문학적 성취로도 인정받았으며, 불교적 세계관을 철학적·시적으로 표현하는 데 성공한 사례로 남아 있다. 특히 한 장만 넘겨도 곧 특별한 장면이 펼쳐질 듯한 분위기는 더욱더 독자들로 하여금 이 책에 몰입하게 한다. 〈화엄경〉의 사사무애(사물과 사물 간에도 걸림이 없다) 사상이 그대로 적용되어 대상 인물이나 지역, 영역, 그리고 시간과 공간의 벽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이 밖에도 <옷을 벗지 못하는 사람들>(정다운, 1980), <길 없는 길>(최인호, 1993), <만행,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현각, 1999), <산에는 꽃이 피네>(법정, 1998), <오두막 편지>(법정, 1999) 등이 당시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2013년 729쇄


# 2000년대 이후: 치유와 명상의 시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불교 서적의 흐름은 보다 실용적인 방향으로 나아갔다.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사회에서 불교적 가르침은 스트레스와 불안을 극복하는 방법론으로 조명받기 시작했다. 명상과 치유, 행복에 대한 통찰을 담은 책들이 대중의 관심을 끌었으며, 불교가 더 이상 특정 종교인의 전유물이 아닌 현대인들의 삶의 지침이 되는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2012)은 출간 후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키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혜민 스님(1974~)은 미국 햄프셔대학 종교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중, 트위터(현 X)에 치유의 글을 올리며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68만여 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스님은 SNS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파워 트위터러'로 자리 잡았다.

이 책은 스님의 짧지만 깊이 있는 글과 감성적인 일러스트를 엮어낸 것으로, 2017년 2월 기준 누적 판매량 300만 부를 돌파했다. 교보문고에서 2007년부터 2021년까지 최다 판매량을 기록했다. 2010년대 10년간 가장 많이 팔린 도서로도 선정됐다.

출간 당시, 사회적으로 심리적 치유와 힐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더욱 큰 호응을 얻었으며, 이후 여러 명상 및 마음 치유 서적들이 대중적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다.

<스님의 주례사>(2010)는 평화 운동가이자 불교계 대표 법사 법륜스님(1953년~)의 대표작이다. 일반 대중을 주축으로 한 <즉문즉설>을 통해 사랑과 결혼에 대한 환상을 깨고, “결혼이란 좋은 것이 아니라 괴로운 것이며, 괴로움을 감당할 준비가 되었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라는 현실적인 조언을 하였다. 2012년 TV 프로그램 출연 이후 판매량이 급증해, 방송 후 일주일 만에 약 2000권이 판매됐고 누적 판매량 48만부를 돌파했다.

이 밖에도 <일기일회>(법정, 2009),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달라이라마, 2001), <인생수업> (법륜, 2013), <화>(틱낫한, 2013) 등이 있다.

민족사는 “한때 불교 서적에서도 밀리언셀러가 등장했지만, 출판 시장 축소로 인해 이제는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그러나 불교 서적은 여전히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며 독자들에게 삶의 지혜와 성찰을 선사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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