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기] 달라이 라마 성하의 손을 잡고…다람살라에서 되새긴 자비와 평화의 서원

인도 순례를 다녀온 지 한 달 남짓 지났다. 원고를 쓰기 위해 지난 여정을 되짚어 보니,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역시 달라이 라마 성하와의 친견이었다. 그 만남은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머물러 있던 인연이었다. 꿈속에서 성하를 친견한 뒤 2~3년의 시간이 흘렀고, 마침내 인도 다람살라에서 직접 뵙는 시간이 주어졌다. 짧은 만남이었다. 친견에 앞서 거쳐야 했던 엄격한 경호와 절차 때문에 마음 한편에는 아쉬움도 있었다. 그러나 성하의 엷은 미소를 마주하는 순간, 그 모든 마음은 조용히 가라앉았다.

성하의 미소에는 긴 세월의 흔적이 배어 있었다. 나라를 잃은 민족의 아픔, 망명지에서 불법을 지켜온 수행자의 고요함, 세계 곳곳에 자비와 평화의 메시지를 전해온 한 생애의 무게가 함께 느껴졌다. 그 미소는 마치 “잘 왔다”고 말하는 듯했다. 돌아와 생각해 보니, 성하는 어쩌면 “이 산중에 깃든 나라 잃은 이들의 실상을 보았느냐”고 묻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람살라의 맥로드 간즈로 향하는 길은 좁고 가팔랐다. 중앙선도 없는 산길을 따라 승용차 두 대가 겨우 비켜 갈 수 있는 길을 지나야 했다. 버스가 오르기에도 쉽지 않은 그 길 끝 능선에 중앙티베트행정부와 달라이 라마 성하가 머무는 츠글락캉 사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주변에는 케이블카 탑승장과 숙박시설, 기념품 가게, 식료품 가게들이 이어져 있었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그곳에는 망명지 특유의 고요함과 절박함이 함께 배어 있었다.

친견은 다음 날 아침에 이뤄졌다. 일행은 새벽 6시에 일어나 츠글락캉 사원으로 향했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이미 많은 이들이 성하를 친견하기 위해 모여 있었다. 도로 주변의 기념품 가게들도 하나둘 문을 열고 순례자들을 맞았다. 산중의 차가운 공기와 사원의 고요한 기운이 어우러져 묘한 신성함을 자아냈다.

사원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보안 검사를 거쳐야 했다. 소지품을 맡기고 대기실에서 차례를 기다렸다. 시간이 흐르자 대기실은 각국에서 찾아온 사람들로 가득 찼다. 저마다 다른 언어와 얼굴을 지녔지만, 그 자리에 모인 이들의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한 사람 한 사람 순서에 따라 이동했고, 마침내 성하와 마주하는 시간이 찾아왔다.

성하와 나는 오른손을 맞잡았다. 엷은 미소가 눈앞에 있었다. 손을 놓아야 하는 순간이 왔지만, 마음은 좀처럼 그 손길에서 떨어지지 못했다. 실제로는 짧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이생에서 처음 만난 그 손길의 감촉은 지금도 마음속에 남아 있다. 그 장면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 한쪽이 따뜻해진다.

달라이 라마 성하는 긴 세월 동안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로 살아왔다. 나라를 잃은 백성의 아픔을 품고, 세계 곳곳에 불교와 자비의 가르침을 전했다. 수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불심을 일깨웠고, 종교를 넘어 평화와 비폭력의 길을 보여주었다. 만 90년에 가까운 한 생애가 그 미소 속에 고요히 담겨 있었다.

이번 순례 중 나는 여러 생각에 잠겼다. 수행자로서, 또 불자로서 이곳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전생의 인연이 있다면, 그 인연 앞에서 나는 어떤 마음을 내야 할까. 다람살라에 머물 때는 분명 그런 생각을 깊이 했지만, 돌아와 일상 속에 머무는 동안 그 마음을 잠시 잊고 있었다. 기행문을 쓰며 다시 그때의 서원을 되살리게 됐다.

우리의 삶은 돌고 돈다. 이생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기 위해 왔는지, 전생의 나는 어떤 길을 걸었는지 때때로 생각하게 된다. 지나간 시간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남고, 애틋한 과거는 그리움으로 되살아난다. 그러나 불교의 가르침에서 보면 이 모든 인연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끝없는 윤회의 길 위에서 내 부모 아님이 없고, 내 형제 아님이 없다는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존재를 함부로 대할 수 없다. 어렵고 불쌍한 이들, 약하고 외로운 이들,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이들을 한 번 더 생각해야 한다. 말 한마디라도 따뜻하게 건네고, 손 한 번이라도 더 내밀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수행자의 길이며, 불자가 세상 속에서 실천해야 할 자비의 모습이다.

달라이 라마 성하와의 짧은 친견은 내게 긴 여운을 남겼다. 그 손길은 한 개인과의 만남을 넘어, 고통받는 존재를 외면하지 말라는 가르침처럼 다가왔다. 산중의 망명지에서 지켜온 미소는 자비가 무엇인지, 평화가 어디에서 시작되는지를 묵묵히 일러주고 있었다.

인도 순례는 끝났지만, 그곳에서 새긴 마음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 중요한 것은 그 마음을 일상 속에서 어떻게 이어가느냐다. 고통받는 이에게 한 번 더 손을 내미는 삶, 약한 존재를 한 번 더 돌아보는 삶, 그리고 모든 인연을 부처님 인연으로 대하는 삶. 그 길 위에서 다시 수행자의 서원을 새긴다.



곡담스님 ㅣ 서울취재본부장 gd@wbm-tv.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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