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오후 2시 32분, 허망하게 무너져 내린 서소문 고가차도. 사고 발생 사흘만인 오늘, 그 현장을 찾았습니다. 마주한 현장에선 포크레인 두 대가 붕괴된 잔해를 황망히 걷어내고 있었고, 경찰들은 주변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습니다. 불과 며칠 전까지 일상의 풍경이 이어지던 공간은 이제 생과 사가 엇갈린 비극의 자리로 남아 있었습니다.
공사 현장 안전판에 적힌 “1966년 개통, 2025년 철거. 59년간 수고 많았어.”라는 문구는 무심하면서도 애잔하게 다가왔습니다.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서울의 든든한 동맥 역할을 해온 구조물이 인연이 다해 해체되는 마지막 길목에서 끝내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한 채 참담한 비극을 남기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고는 찰나의 순간, 더 큰 재앙으로 번질 뻔했습니다. 상판이 무너지기 불과 5분 전에는 KTX가, 1분 전에는 무궁화호 열차가 그 아래 선로를 지나갔습니다. 만약 단 몇 분만 타이밍이 어긋났더라면 우리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대형 참사를 마주했을지도 모릅니다.
더 많은 인명 피해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번 비극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잃은 생명은 결코 숫자로 헤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고로 세 분이 목숨을 잃었고, 세 분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돌아가신 분들의 사연을 들여다보면 가슴은 더욱 먹먹해집니다.
올해 정년을 앞두고 평생 몸담았던 직장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던 관리소장 이 모 씨는 공교롭게도 사고 당일이 생일이었다고 합니다. 축하와 따뜻한 인사를 받아야 할 날, 그는 차가운 콘크리트 더미 아래에서 끝내 마지막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그와 함께 끝까지 현장을 지키던 60대 감리단장 안 모 씨, 그리고 구조물의 균형을 계측하며 안전을 확인하던 40대 구조물 전문가 이 모 씨 역시 자신의 소임을 다하다 현장에서 삶을 마감했습니다. 맡은 일을 끝까지 책임지려 했던 이들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리면 참담함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아무 잘못 없이 길을 걷다 머리와 어깨 등을 다쳐 병원으로 이송된 행인들 또한 불의의 사고로 깊은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평범했던 하루가 한순간에 악몽으로 바뀌어버린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모든 결과에는 반드시 원인이 따른다는 인과법(因果法)을 설합니다. 우리 사회는 이미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겪었습니다. 10년 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와 최근 GTX-A 삼성역 복합환승센터 철근 누락 사태까지 수많은 비극을 지나오며 법과 제도를 보완하고 안전 기준을 강화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참사는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기술이나 제도의 부족만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비용 절감과 속도, 효율을 우선시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사람의 생명이 뒤로 밀려난 것은 아닌지 냉정히 돌아봐야 합니다.
이번 사고는 우리 사회가 여전히 ‘돈과 효율’이라는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에 휘둘리며 생명의 가치를 온전히 지켜내지 못하고 있음을 통렬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번 사고의 원인과 책임 또한 한 치의 흐림 없이 엄중하게 규명돼야 할 것입니다.
특히 사고 당일 새벽, 이미 철거 작업 도중 이상 징후가 발견돼 공사를 멈추고 오후 2시부터 관계자 9명이 안전 점검에 들어갔음에도 왜 현장에 있던 전문가들이 대피하지 못한 채 불과 32분 만에 참변을 당해야 했는지 철저히 밝혀져야 합니다. 원인을 바로 세우지 못한다면 비극의 윤회(輪廻)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제도적 공백입니다. 노후화된 사회간접자본(SOC)의 해체 수요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지만,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규율할 관련 법과 기준은 여전히 미비한 상황입니다. 오래된 구조물을 세우는 일만큼이나 안전하게 해체하는 일 또한 중요한 사회적 책무임에도, 제도는 현실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소중한 목숨이 희생된 뒤에야 뒤늦게 움직이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조속한 법 개정과 함께 사회 전반의 안전관리 시스템을 다시 점검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생명을 가장 우선에 두는 자비의 가치가 우리 사회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목숨보다 앞서는 효율은 없으며, 생명을 지키는 일보다 중요한 책임 또한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59년 동안 서울을 지탱해 온 고가의 마지막 길에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세 분 영가(靈駕)들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탐욕과 번뇌, 고통이 없는 극락정토(極樂淨土)에 이르러 편안히 영면하시기를 두 손 모아 발원합니다.
불의의 사고로 깊은 슬픔에 잠긴 유가족들에게도 부처님의 자비 광명이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병상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부상자들께서 하루빨리 고통의 바다를 건너 건강을 회복하시기를 지극한 마음으로 서원합니다.
이번 참사가 또 하나의 안타까운 사건으로만 스쳐 지나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생명을 먼저 살피는 사회, 안전을 비용이 아닌 책임으로 여기는 사회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발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