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당시 승가와 21세기 승가의 다양성에 대하여
부처님께서 출현하신 기원전 6세기경의 인도 사회는 브라만교 전통과 사문 전통이 함께 존재하던 시대였다.
브라만교는 오랜 세월 동안 베다(Veda)를 최고의 권위로 삼았으며, 신들에게 제사를 올리는 의식을 통해 인간의 행복과 번영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제사를 집전하는 브라만 계급은 종교적 권위와 사회적 지위를 독점하였고, 사람의 신분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다는 카스트 제도를 정당한 질서로 여겼다.
따라서 브라만교에서는 혈통과 제사의식이 종교생활의 중심이 되었으며, 인간의 구원 또한 이러한 전통을 충실히 따르는 데 있다고 보았다.
이에 비해 사문(沙門) 전통은 브라만교의 권위와 형식주의에 문제를 제기하며 등장하였다. 사문들은 베다의 절대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고, 제사나 혈통이 아니라 자신의 수행과 깨달음을 통해 삶의 진리를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집과 재산을 버리고 출가하여 일정한 거처 없이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명상과 고행, 철학적 탐구를 실천하였다. 수행자들은 다양한 사상을 주장하며 서로 토론하였고, 인간의 고통과 죽음, 윤회와 해탈의 문제를 깊이 탐구하였다.
부처님도 처음에는 이러한 사문 전통 속에서 수행을 시작하셨다. 여러 수행자를 찾아가 선정 수행을 배우고 극심한 고행도 실천하셨지만, 그것만으로는 완전한 깨달음에 이를 수 없음을 몸소 깨달으셨다.
이후 부처님께서는 감각적 쾌락에 빠지는 삶도, 자신을 극도로 괴롭히는 고행도 모두 바른길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시고, 두 극단을 떠난 '중도(中道)'를 깨달음의 길로 제시하셨다.
또한 부처님께서는 사람의 가치는 태어난 신분이 아니라 행위와 인격, 그리고 수행에 의해 결정된다고 가르치셨다.
브라만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저절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며, 누구나 계율을 지키고 마음을 닦아 지혜를 얻으면 성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설하셨다.
이러한 가르침은 당시의 신분 중심 사회에 매우 새로운 사상이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이처럼 브라만교가 제사와 혈통, 전통의 권위를 중시하였다면, 사문 전통은 개인의 수행과 깨달음을 중시하였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사문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고행주의를 넘어서 중도의 수행법을 밝히시고,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해탈의 길을 제시하심으로써 불교라는 새로운 종교를 세우셨다.
이러한 점에서 불교는 당시 인도 종교사 속에서 혁신적인 사상으로 평가되며, 오늘날까지도 인간의 자유와 평등, 그리고 스스로의 수행을 강조하는 종교로 이어지고 있다.
고대 인도에서 '방랑수행자'는 산스크리트어로 파리브라자카(parivrājaka)라고 불렸으며, 문자 그대로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수행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들은 가정과 사회적 의무를 떠나 일정한 거처 없이 숲과 마을을 오가며 생활하였고, 탁발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명상과 철학적 탐구를 통해 삶의 진리와 해탈을 추구하였다.
또한 여러 스승을 찾아다니며 가르침을 배우고 다른 수행자들과 토론하는 것이 수행의 중요한 일부였다.
기원전 6세기 무렵의 인도 사회에서는 브라만교의 제사 중심 신앙에 대한 비판이 점차 커지면서, 제사나 혈통보다 수행과 깨달음을 중시하는 새로운 종교적 흐름이 나타났다.
이러한 흐름을 통틀어 사문(Śramaṇa) 전통이라고 하며, 불교와 자이나교를 비롯한 여러 수행 집단이 이 전통 속에서 성장하였다.
방랑수행자들은 인간이 겪는 고통의 원인과 그 해결 방법을 탐구하였으며, 각자의 수행법과 철학을 발전시켜 서로 경쟁하고 논쟁하기도 했다.
석가모니 부처님 역시 처음에는 이러한 방랑수행자의 한 사람이었다. 왕궁을 떠난 뒤 여러 스승을 찾아다니며 수행하였고, 고행과 명상을 실천한 끝에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깨달음 이후에도 부처님은 일정한 사원에 머무르기보다 제자들과 함께 북인도의 여러 지역을 걸어서 다니며 사람들에게 법을 설하였다.
우기에는 한곳에 머물렀지만, 그 외의 계절에는 끊임없이 유행(遊行)하며 가르침을 전했다. 초기 불교 승가의 생활 방식도 이러한 방랑수행자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었다.
따라서 '방랑수행자'는 단순히 여행하는 수행자를 뜻하는 말이 아니라, 기존의 사회 질서와 종교적 권위에서 벗어나 진리를 직접 탐구하고 실천으로 깨달음을 얻고자 했던 고대 인도 사문 전통의 이상을 상징하는 존재이다.
불교는 바로 이러한 방랑수행자의 전통 속에서 탄생하였으며, 부처님의 삶과 초기 승가의 모습도 그 역사적 배경 위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인도 고대 불교의 방랑수행자 전통은 오늘날 우리나라 불교의 운수납자(雲水衲子) 정신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운수납자란 구름과 물처럼 한곳에 머물지 않고 인연을 따라 수행하는 승려를 일컫는 말로, 초기 불교의 사문들이 일정한 거처 없이 유행(遊行)하며 수행하고 법을 전하던 모습과 그 정신을 이어받은 전통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수행 전통은 출가 본연의 청정한 삶을 지키고, 수행을 통해 불법의 근본을 계승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활동하시던 시대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사회적 환경이 크게 달라졌다.
현대 사회는 과학기술과 정보통신이 급속히 발전하고 산업화와 도시화가 이루어진 문명사회이며,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경제체제 속에서 복잡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도 과거와는 크게 달라졌으며, 불교가 마주하는 사회적 과제 또한 훨씬 다양해졌다.
이러한 시대에는 수행의 전통을 계승하는 운수납자의 존재가 여전히 중요하지만, 동시에 현대인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기 쉽게 전하고 사회와 소통하며 공동체를 이끌어 갈 승려의 역할 또한 절실하다.
사찰은 더 이상 수행자만의 공간이 아니라 신행 공동체를 형성하고 교육과 상담, 문화와 복지, 지역사회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수행하는 공간이 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는 사판승 역시 현대 불교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수행과 전법은 서로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라 서로를 완성하는 두 축이다. 깊은 수행이 없는 전법은 생명력을 잃기 쉽고, 세상과 소통하지 않는 수행은 중생을 향한 자비의 실천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뒤 숲속에 머무르지 않으시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 중생들에게 법을 설하셨듯이, 오늘날의 불교도 전통적인 수행정신을 굳건히 지키면서도 시대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응답하는 전법과 포교를 실천해야 한다.
운수납자의 청정한 수행과 사판승의 사회적 역할이 조화를 이룰 때, 불교는 현대 사회 속에서도 살아 있는 가르침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글·사진=보검스님 ㅣ 세계불교 네트워크 코리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