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검스님의 국제불교] 조용한 묵언의 가르침: 세계평화를 위한 미국 횡단 도보 여정

미국 텍사스 주, 포트 워스에서 워싱톤 D.C.까지

지난 10월부터 테라와다 불교 승려들은 포트워스에서 워싱턴 D.C.까지 3,700km에 달하는 평화의 길을 걷고 있다.

지난해 10월 26일부터 테라와다 불교 스님들이 도보로 미국을 횡단하는 평화의 길을 걷고 있다.

텍사스주 포트워스에서 워싱턴 D.C.까지 120일 동안 3,700km를 걷는 여정으로, 미국과 전 세계에 평화와 자비, 그리고 연민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함이다.

스님들은 충직한 반려견 '알로카'와 함께 지금도 대장정을 이어가고 있는데, 올해 2월경 마무리될 예정이다.

이 대장정은 디지털 소음과 이념적 분열로 얼룩진 이 시대에 가장 묵직하고도 감동적인 울림을 전한다. 길 위에서 온몸으로 법(法)을 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걸음은 그 자체로 불교의 핵심 진리인 삼법인(三法印)을 관통하는 치열한 수행이다.

실제로,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고 터지기를 반복하지만, 그들의 발걸음은 쉼이 없다. 시위의 깃발도, 확성기의 소음도 없다. 오직 낡은 가사가 스치는 소리와 도반(道伴)인 알로카의 거친 숨소리만이 이 여정을 채우고 있다.

그들은 부처님의 가장 오래된 가르침, 즉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해 나아가라는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조용한 발걸음으로 그들은 우리 세상에 거울을 비춰 자비에 대한 깊은 갈망과 우리가 아직 직면해야 할 어둠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 걷기 그 자체가 불법의 핵심 진리를 증명하는 것이다. 새벽의 시원한 결심이 오후의 피로로 바뀌고, 물집이 생겼다가 아물듯이, 이는 무상(아니짜, anicca)을 실천하는 살아있는 과정이다.

본질적인 고통인 고(둑카, dukkha)를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근육통뿐 아니라 텍사스 데이턴 근처에서 발생한 참혹한 사고처럼, 한순간의 부주의로 한 승려가 다리를 잃는 비극을 겪으며 고통은 더욱 절실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들은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연기(빠디까삼무빠다, paticca samuppada)를 실천한다.

걸음마다, 건네받은 물 한 병 한 병, 호기심 어린 눈길 한 번 한 번이 다음 깨달음의 순간을 위한 상호 연결된 조건임을 보여준다.

평화를 향한 침묵의 행진.

그렇다면 그들이 마주하는 인간 마음의 상태는 어떨까?

쏟아지는 지지, 즉 인파, 기도, 열린 집들은 그들이 전하는 평화에 대한 보편적인 갈망을 보여준다.

하지만 모든 거울이 그렇듯, 그 반영은 우리의 혐오감 또한 드러난다.

지옥불을 예언하는 거리 설교자의 외침과 익명의 온라인 악플러들의 악담이 그들을 맞이했다. 이러한 만남은 단순한 주의 분산이 아니다.

그것들은 바로 수행이 뿌려지는 윤회의 밭이다. 대립에 직면했을 때, 승려들은 논쟁하지도, 움츠러들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저 고요하고, 절제되고, 자비로운 모습으로 존재할 뿐이다. 그 순간 그들의 침묵은 공허함이 아니라 강력한 존재감이었다.

그것은 자비심이 수동적인 동의가 아니라, 증오를 증오로 되갚지 않는 능동적이고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요새임을 보여주었다.

그들의 지지자들이 현명하게 지적했듯이, 자유롭게 베푼 자비의 목소리는 어떤 항의보다 훨씬 더 크게 울려 퍼졌다.

부처님 자신의 수행 또한 짜리카 즉 끊임없는 방랑이었다. 첫 제자들이 깨달음을 얻은 후, 부처님은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사명을 주며 그들을 보내셨다.

"비구들이여, 많은 이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나아가라."

부처님의 걸음은 움직이는 법(法, 진리)이었다. 부처님의 걸음걸이 자체가 평정심을 가르치는 마음 챙김의 구현체였으며, 철저한 무집착의 실천이었다.

그는 왕부터 천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을 만나기 위해,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기 위해 걸었다.

평화는 목적지가 아니라 여정 자체의 질에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유일한 멈춤은 우기 안거(安居), 즉 고요함과 비폭력의 수행을 통해 수행의 리듬을 완성하는 시간이었다.

그렇다면 이 현대판 평화의 행진에서 어떤 법의 가르침이 나올까요?

그 행진 자체가 가르침이다.

첫째, 바른 행동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인 경우가 많다는 것을 가르친다.

평화는 논쟁의 대상이 되는 개념이 아니라 걸어가야 할 길이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단련되어야 할 근육과 같다. 인내, 적대감에 맞서는 모든 숨결 하나하나를 억누르는 것.

둘째, 증오로는 증오를 치유할 수 없다는 최고의 진리를 구현함다.

두려움과 무지에 대한 승려들의 흔들림 없는 자비심은 담마빠다의 핵심 구절을 실천적으로 적용한 것이다.

그들은 양극화된 세상에 흔들림 없는 자비심을 통해 공격성을 변화시키는 연금술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여정과 목표가 하나임을 일깨워준다. 워싱턴으로 가는 여정은 정치적 수도에 도착하여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그 여정 자체가 전달이다.

매 킬로미터는 가르침이고, 모든 만남은 담론이며, 인내의 매 순간은 담마(법)의 깨달음이다.

변화하는 풍경과 날씨를 헤치며 북쪽으로 나아가는 이 승려들과 사랑하는 알로카(개이름)는 가르침의 오랜 수레바퀴를 짊어지고 있다.

그들이 걷는 이유는 우리에게 다음을 기억하게 하기 위함이다.

평화로 가는 길은 우리가 있는 곳에서 시작되고, 열린 마음으로 앞으로 나아갈 용기가 필요하며, 타인에 대한 승리가 아니라 모든 존재에 대한 흔들림 없는 친절로 포장되어 있다는 것을.

그들의 조용한 발걸음은 우리를 초대한다 . 묻고 싶은 것은, 우리는 오늘날 우리 자신의 세상을 어떻게 걸어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글·사진=보검스님 ㅣ 세계불교 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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