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검스님(세계불교 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했다. 인도에는 이미 기존 종교가 존재하고 있었다. 고오타마 싯다르타는 인생과 우주에 대한 궁금과 의문에 몸부림을 쳤다.
간단히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누구도 그의 인생에 대한 궁금증과 우주 본원의 실상에 대하여 답을 주지 못했다.
그는 태자로서 차기 왕위에 오를 권위를 지니고 있었으며 화려한 세속생활이 보장된 왕족의 신분이었다. 더구나 아름다운 부인들이 있었다.
하지만 진리추구의 욕구를 억제하지 못했다. 출가 사문의 길을 택해야만 답을 얻을 수 있다는 신념에서 과감하게 무소유의 은둔 수행자가 되었다.
처음엔 두 명의 요가 명상 스승 밑에서 도를 닦았으나 소득이 없자, 독자적으로 행동하였다.
보드가야에서 그리 멀지 않는 전정각산 동굴에서 명상 수행에 들어갔다. 이때는 다섯 명의 도반이 있었다. 그런데 6년간의 고행이 있었지만, 진전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전정각산을 내려와서 마을에 이르러 수자타의 우유 죽 공양을 받아먹고 정신을 차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다음 니련선하에서 목욕재계하고 지금의 보드가야 대탑사원 보리수 아래에 정좌하여 선정 삼매에 든 다음, 무상대도의 대각을 성취하고 붓다, 깨달은 분이 되었다. 이후에는 붓다 즉 부처님으로 등극하신 것이다.
부처님은 대각을 한 후, 49일 정도 침묵을 하면서 스스로 법락(法樂)을 즐겼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밤, 하늘로부터 온 천신의 권청을 받아 깨달음을 일체중생들에게 전파하여 이 세상이 불국정토가 되도록 서원을 세우게 됐다.
불교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시점이 바로 이 대목이다. 이른바 ‘깨달음의 나눔’이다. 붓다 석가모니는 보드가야 대탑 보리수에서 바라나시 사르나트(녹야원)로 향했다.
붓다의 도반이었던 다섯 비구를 찾아 나선 것이다. 다섯 비구를 만나자마자 그들은 알아차렸다.
고오타마 싯다르타가 무상대도를 성취하여 붓다 즉 깨달은 자가 되었음을 대번에 인지하였다. 이로써 불교라는 종교의 승가가 시작됐다. 말하자면 불교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석가 부처님은 45년간 길에서 생활하면서 설법을 하였는데, 평생 ‘삼승 12분교’를 설하신 것이다. 이것을 부처님의 ‘일대시교(一代時敎)’라고 한다.
우리 불제자들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삼승 십이분교’의 일대시교를 배워서 깨달음을 얻어 해탈, 열반에 이르고자 정진하는 것이다.
<보검스님의 세계불교 산책>에서 부처님 일생일대의 삼승 십이분교의 가르침을 소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불교 역사상의 승가가 어떻게 변화해 오고 있는가에 대하여 세계불교를 통해서 살펴보고 우리의 불교를 되돌아보면서 시대에 적응하는 불교로 변혁을 하자는 것이다.
그러므로 연재 순서가 자연스럽게 부처님 승가로부터 부파불교 시대, 대승불교 시대, 밀교 시대 등을 지나서 오늘날의 신(新) 불교에 이르기까지 세계불교를 통해서 인식의 지평을 넓히자는 것이 필자의 의도이다.
우리 불교는 지금 위기에 처해 있다. 신도 수가 급감하고 출가자 수 또한 점점 감소하고 있다.
승가(僧伽)가 없는 불교를 생각할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 불교는 다른 나라 불교에 대해서 정보와 지식이 있어야 하고 교류를 함으로써 서로 좋은 점은 본받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태국의 비구들이 방콕 붓다 몬톤의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지금 시대는 혼자 사는 시대가 아니다. 나라도 마찬가지이고 종교도 예외가 없다. 특히 불교는 해외 불교와 교류가 절실하다.
한국불교는 인도에서 직수입한 것이 아니라, 중국으로부터 수용했다. 그러면 중국은 인도에서 불교를 바로 받아들였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초기에는 페르시아(이란계)의 파르티아 승려들로부터 불교를 알게 되었고 배우게 되었다. 페르시아에 불교가 전해지면서 인도 고유의 초기 불교가 그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인도 초기 불교는 페르시아에 전파되면서 페르시아의 기존 문화와 교섭하면서 다소 변화된 즉 페르시아식 불교가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변용된 불교가 중앙아시아를 경유하여 파미르고원을 넘어서 오아시스 나라들인 사막지대를 지나서 중국 땅에 불교가 유입됐다.
중국에 전해진 불교는 이미 인도의 고유 불교하고는 다소 다른 모습이었다. 한국불교는 중국에서 불교를 전달받았던 것이다.
이제 한국불교 입장에서 본다면, 한국불교가 인도 초기 불교와 얼마나 간격이 있겠는가를 추정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의 남방 상좌부 불교와 우리 불교를 비교하면 알 수 있다. 어떤 부분은 타(他) 종교처럼 생소한 면이 없지 않다.
우리는 같은 종교로서 불교 승려이며 불자이지만, 현실은 거리감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검스님의 세계불교산책>에서 이런 부분에 주목하면서 서로의 간격을 살펴보면서 상호 이해하고 같은 부처님의 제자로서 공통점을 찾아 정보를 교환하고 교류하는 데에 목적을 두고 결국에는 하나의 불교로 통일해 가는 역할을 해보자는 취지에서 이 글을 기획하게 됐다.
글·사진 = 보검 스님 ㅣ 세계불교 네트워크 코리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