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영 중앙편집국장
오늘날 우리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혼란스럽다. 이런 때일수록 정치적 논리에 휩쓸리기보다는 정신적 수양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된다.
정신적 수양은 단순한 자기계발이 아니라, 내면의 평온을 찾고 인간됨을 지켜내는 근본적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요한 마음이 곧 해탈의 길이 아닐 수 없다.
부처님께서는 “번뇌가 곧 보리”라 하셨다. 번뇌가 많은 시대일수록 그것을 수행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사회의 혼란은 우리를 흔들지만, 그것이 곧 깨달음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금강경>에서는 “응당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應無所住而生其心)”라고 하셨다. 즉, 변하는 세상에 집착하지 않고 무집착의 마음으로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너무나 많은 자기주장이 넘쳐난다. 나라가 어디로 갈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이다.
그러나 불자라면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내면을 닦아야 한다. 계(戒)를 지키고, 정(定)을 실천하며, 혜(慧)를 기르는 것이야말로 불자로서 걸어가야 할 길이다.
우리가 계율을 지키면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 수 있고, 선정(禪定)을 닦으면 혼란 속에서도 고요함을 유지할 수 있으며, 지혜를 기르면 바른 길을 찾을 수 있으리라.
정신적 수양은 먼저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자신의 주장이 어느 쪽으로 치우쳤는지, 어떤 욕망에 휩쓸리는지를 알아야 감정과 생각을 조율할 수 있다. 철학과 종교적 가르침을 통해 내면의 질서를 세우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유이다.
우리는 보통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사회 구조를 변화시키려 한다. 이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더욱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의 마음을 바꾸고 다스리는 데 있다.
우리 사회의 진정한 발전은 개인의 정신적 성숙이 바탕이 되어야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의미에서 “사회의 진보는 제도의 변화만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과 도덕의 성숙에 달려 있다”는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의 말이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예로부터 불자들이 시대의 혼란 속에서도 정진(精進)과 선정(禪定)을 통해 중심을 잡았듯이, 오늘날 우리도 내면의 안정성을 바탕으로 사회적 성숙을 이뤄야 하겠다.
혼란한 시대일수록 정신적 수양이 사치가 아니라 필수임을 깨달아야 한다. 물질적 풍요가 마음의 평온을 보장해주지 않는 시대, 오히려 내면의 조율을 통해 삶을 가꾸는 일이 더욱 중요해졌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내면의 중심을 잡고, 인간 본연의 가치를 지켜나가는 것이야말로 우리 불자(佛子) 모두가 가야 할 길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