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널리 알리며 젊은 세대와의 공감을 통해 한복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한복연구가가 있다. 바로 김생자 선생이다.
먼저, 선생님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우린 전통 복식인 한복의 매력에 푹 빠져, 한복을 만들고 연구하고 있는 ‘한복쟁이’다. 현재 서울 서초동에서 매장과 연구실을 운영하면서 한복을 널리 알리고자 힘쓰고 있다.
한복과 인연을 맺은 지 얼마나 됐나? 그리고 그 계기는 무엇이었나?
올해로 20년이 됐다. 이전에는 한복과 전혀 관련 없는 직장인의 삶을 살다가, 어느 날 꾼 꿈이 한복을 만드는 시발점이 된 것 같다.
어떤 꿈이었길래 그러나?
꿈속에서 신선 같은 분이 보따리를 하나 건네기에 무작정 따라나섰더니 청와대라고 쓰인 곳으로 들어갔다.
그로부터 수일 후, 한 중년 여성으로부터 한복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게 됐고, 그 제안에 찾아간 곳이 바로 꿈속에서 보았던 그 집이었다.
청와대라는 팻말만 없었을 뿐 모든 것이 꿈속과 너무나 똑같았기에 이끌리듯 그 다음날부터 출근을 했다.
운명처럼 기회가 찾아왔다 하더라도, 그걸 선택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진열된 한복을 보는 순간 그 아름다움에 빠져들고 말았다. 특히 한복을 돋보이게 하는 한국의 전통 색상인 오방색이 두 눈 가득 들어왔는데, 그야말로 천상의 예술작품을 보는 듯하면서 진한 감동일 밀려왔다. 그때 한복은 나와 함께 가야 할 평생의 업이자 동반자임을 직감했다.
경험하지 못한 일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나?
당시 내 나이 30대였다. 그러다 보니 두려움이 앞선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한복의 아름다움에서 느껴지는 감동이 더욱 컸다. 그렇기에 늦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으로 한복을 공부하기 시작하며 밑바닥부터 하나씩 배워 나갔다.
배움의 과정이 힘들진 않았나?
한복에 입문하고 8년간을 일했는데, 힘들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 테다. 하지만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가 져야한다고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늘 남보다 더 노력하고자 했다.
어떤 가르침을 받았나?
많은 가르침을 받았지만 무엇보다 삶의 지혜를 얻게 된 귀중한 시간이었다. 고객과 신뢰를 쌓을 수 있는 대화법, 시장에서 재료 구매 시 처세법 등 인간관계와 소통의 미학을 깨우칠 수 있었으니 말이다.
당시 일하면서 왜 스카웃을 제안했는지 물어보진 않았나?
쌍둥이였던 두 분 원장님은 그냥 예뻐서 그랬다고 말씀하셨다. 지금은 이래도 그땐 날씬하고 예쁘고 총명해 보여서 한복과 잘 어우러지는 그런 이미지였다고 하셨다.(웃음)
8년간 공부를 마치고 나와서 따로 한복점을 차린 것인가?
처음에는 한복을 그만두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했다. 8년을 배웠다고 해도 그 정도 경력으로는 어림도 없는 데다, 알면 알수록 어려운 게 한복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화장품 매장을 냈다. 하지만 8년이라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져 매장 한켠을 한복으로 꾸며 화장품과 한복을 병행했다.
어설프게 한복을 하지는 않겠다는 결심 같은 것이 엿보이는데?
아마도 마음속 깊은 어딘가에 장인이 아니면 하지 않겠다는 고집스러움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그런 마음가짐이 있었기에 단 한순간도 포기하지 않고 지금껏 버텨오지 않았나 싶다.
한복장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 텐데, 모자람을 어떻게 채웠나?
2001년 서초동에 매장을 오픈한 후에도 매일 새벽마다 여러 한복장인 선생님을 찾아다니며 배움의 길을 걸었다. 한복 제작부터 수선에 이르기까지 3년간 공부했다. 그러다 보니 조금씩 입소문을 타면서 나름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한복 패션쇼도 개최한 것으로 아는데?
2013년도에 그동안 제작했던 한복들을 가지고 팔레스호텔에서 첫 패션쇼를 열었다. 최근에는 의상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통해 기존에 보지 못했던 퓨전 스타일의 한복을 선보이는 패션쇼를 여러 차례 진행했다.
한복 대중화의 필요성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어느 분야건 안정적인 수익 창출이 이뤄져야 비로소 연구와 개발, 투자 등에 눈을 돌릴 수 있다. 그리고 안정적인 수익 창출의 답은 대중화에 있다고 본다.
한복 대중화를 위한 키포인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시대와 트렌드에 맞게 한복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특히 젊은 세대들이 일상생활에서 즐겨 입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젊은 세대들에 대한 선입견, 즉 전통이나 한복을 좋아하지 않을 거란 생각을 버려야 한다.
연후 젊은 세대들과 소통·교감하면서 그들의 생각과 감각, 문화를 익혀야 한다. 그러다 보면 젊은 세대들의 입맛에 꼭 맞는 퓨전 스타일의 생활한복이 만들어지며 자연스럽게 한복의 대중화가 이뤄질 거라고 본다.
아직은 소통이 부족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어떤 노력이 필요하겠나?
한복업계는 폐쇄적인 면이 없지 않다. 그러다 보니 소통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정부 차원에서 그런 자리를 마련하면 좋겠지만 한복진흥청이 있음에도 업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미미한 현실을 감안하면 별반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따라서 업계 스스로가 자구책을 마련하는 노력이 따라야 할 것이다.
한복진흥청이 있음에도 소통 문제를 풀지 못하는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누군가 나서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 연배가 있다 보니 한발 물러서서 지켜만 보는 경향이 짙다. 일단은 한복업계 관계자들이 모여서 한국의 전통의상을 어떤 방향으로 끌어나갈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데, 그마저도 잘 안 되고 있어 안타깝다.
퓨전 스타일의 생활한복을 언급했는데, 자칫 이도 저도 아닌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 않겠나?
그렇기 때문에 부정적인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며, 진짜 편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를 지속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생님이 추구하는 퓨전 한복의 핵심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양장 같은 한복을 만들고자 한다. 트렌드를 반영하면서도 멋과 태가 나고 착장감이 편안한 그런 한복 말이다. 이에 대한 연구를 수십 년간 꾸준히 해오고 있는데, 나 외에도 많은 한복연구가들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퓨전을 너무 강조하면 전통적인 한복의 멋이 다소 떨어질 수도 있지 않겠나?
퓨전 한복이라고 해도 전통적인 색감과 질감, 디자인 등 한복의 멋은 그대로 살린다. 한복 드레스나 고려시대 장군이 입었던 철릭을 모티브로 한 한복 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요즘은 초창기 때와는 달리 색상이나 디자인적인 측면에서 훨씬 업그레이드됐다. 이에 기인해 한복 역시 입기 편한 아름다운 옷으로 한 단계 발전했다.
남성 한복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 2010년쯤에 만들었던 남성 한복(답포)이 지금 굉장히 유행하고 있으니 미리 트렌드를 읽고 준비하는 것이다.
한복을 제작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포인트는 무엇인가?
고객을 존중하면서 열린 마음으로 소통·교감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통해 고객의 마음을 열게 하고, 필요한 부분을 끄집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면 합의점에 이르게 된다.
실제로, 고객이 매장을 방문하면 먼저 면담을 통한 소통의 시간을 갖는다. 그러면서 얼굴 톤과 체형, 한복을 입을 장소 등을 체크한다. 이후 음양오행과 사상체질, 성향을 파악해 그에 맞는 색감을 선택해 한복 제작에 들어간다.
음양오행이나 사상체질까지 고려한다는 건가?
사람마다 고유의 색이 있고, 음양오행과 사상체질에 따라 맞는 색도 따로 있다. 그래서 자신에게 맞는 색감의 한복을 고르는 게 중요하다. 이러한 이치를 깨닫기 위해 명리학을 비롯한 여러 공부를 했다.
한복연구가로서 이루고 싶은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한복의 멋과 매력, 그리고 우리나라만이 가질 수 있는 전통 색상이자, 우주와 인간의 질서를 상징하는 오방색이 가져다주는 아름다움을 국내는 물론 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싶다. 이미 그 준비는 되어 있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언제든지 패션쇼 등을 통해 K-한복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