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 스님


최근 해룡사 주지 태광 스님이 프랑스 현지인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한국불교의 사상을 설파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진한 여운과 감동을 던지고 있다. 이에 태광 스님이 프랑스인이 교환한 주요 편지의 내용을 담아본다. <편집자 주>

[태광 스님의 편지]

프랑스 어느 불교수행자에게

나무아미타불.

불성광명은 모든 불보살 모든 중생들 내부에 있는 보편본성입니다. 이것이 삼세를 관장하면, 법신불 비로자나불이 됩니다.

아미타불은 우리 속에 내재한, 그리고 탐진치의 먹구름이 사라져 나타나는 보신불입니다.
고타마 붓다는 법신불 비로자나불(불성광명)이 인간의 형상으로 온 존재입니다.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두 분 다 불성광명의 형상화된 존재)은 다음 부처님께서 오실 때까지 중생구제를 담당하는 존재며, 수시로 허공 속에서 드러난다거나, 실제 몸을 지니며 도와주는 존재입니다.

불교는 초점 정리를 하지 않으면 헷갈려는 종교입니다.

[태광 스님의 편지]

프랑스 수행자 휴고님에게.

언어는 불멸을 전하는 도구이며, 영혼과 품격, 문화를 담는 그릇이라 하였습니다. 월칭논사는 ‘언어는 현상계를 이어주는 핵심 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언어중심은 매우 중요하고 언어가 다져지면 생명력을 얻게 되고, 수행과 함께 성장하고, 때론 배반하면서 교만하고, 어느덧 성숙한 상태에서 초월하지만, 언어는 저편에서 쓰임을 기다립니다.

불성광명(청정광명, 지혜와 자비의 합일체)을 부르면 그 분께서 오고 난 활기가 넘치며, 나와 함께 하면서 거들어주십니다.

난 님이 없으면, 한시도 존재 하지 않습니다. 님은 저의 중심축이며, 살아 움직이는 증표이기 때입니다. 그 분은 사랑이며, 지혜이며, 저의 존재의 의미입니다. 그 분의 뜻과 감정은 언어와 상징으로 표현됩니다.

그분의 언어는 감미롭고 향기로운 시이며, 정감 있고 센티멘탈한 음악이며, 무아 속에 빠져 움직이는 성스런 춤입니다. 어느 누구도 한번 몰입되면, 벗어날 수 없습니다. 또 다른 나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현지인의 편지]

존경하는 이공(태광) 스님께.

스님의 아름다운 말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스님의 언어는 마치 마음 깊은 곳까지 스며드는 물과 같으며, 지금 이 순간과 불멸의 세계를 잇는 다리처럼 느껴집니다. 제 글을 살아 숨 쉬는 존재로 읽어주심에 큰 영광을 느낍니다.

저는 스님께서 말씀하신 언어의 접근 방식 - 영혼과 문화, 침묵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언어 - 에 깊은 존경을 표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저는 그 언어 너머에 또 하나의 영역을 봅니다. 이야기들이 태어나는 공간입니다.

제가 이야기 속에서 포착하려는 침묵 속에서는 폭포가 거꾸로 흐르고, 산이 숨을 쉬며, 한 아이가 단 한 문장으로 세상을 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선과 악의 구분이 생겨날 수 있지만, 그것은 판단이 아니라 방향입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미세한 흐름입니다.

저는 그곳에서도 판단을 피하려고 합니다. 상상력 속에서의 겸손함으로써 말입니다.

제가 태어나고 자란 네덜란드에서 스님의 말씀을 깊은 경청으로 듣고 있습니다. 그 말씀이 침묵 속에서도 저의 길을 비추어주고 있습니다.

경의와 연대의 마음을 담아, 후고 드림.

[태광 스님의 편지]

프랑스 수행자 휴고님에게.

사랑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은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활짝 열고 진실로 받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인체 내에서는 심장의 자리입니다.

마음을 여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라포형성이라고 합니다. 최면술, 대화, 강연, 회사 연수 등 모든 관계에 있어서 라포형성(開心,마음열기)이 가장 먼저 옵니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고서 일을 한다면,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마음이 닫혀있으면, 서로 딴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서로 소통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불화와 갈등의 요소가 되곤 합니다.

일단 자신 속에 일체를 수용하고, 나쁜 것들은 시각화된 용광로나 태양에 불태워 없애버리고, 좋은 것들은 추억의 보석으로 남겨야 합니다. 다양한 좋은 경험은 풍부한 정신적 자원이 됩니다.

어떤 사랑이건 조건이 붙으면, 오래 갈 수 없습니다. 일체가 무상(無常)하므로 곧 조건이 사라졌을 때 권태와 실증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사랑에 속박을 채우거나 집착하는 것도 그 대상이 배반했을 때 극심한 마음 상처와 말할 수 없는 공허감이 찾아옵니다.

사랑도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에너지입니다. 주관적 판단과 자아적 견해가 소멸되어야 무조건적 사랑의 에너지는 다가옵니다.

그랬을 때 사랑의 에너지가 일어나고, 시간이 가면 충만해지고, 생명력을 갖추고 살아 움직이며 성장하고 꽃피우고 열매를 맺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스스로 자기 감정 주시(注視)로 내부에서 일어나는 사랑의 감정에너지를 포착하는데 신경을 써야 합니다. 타자(인간 또는 반려동물 등)에 정신을 빼앗으면 안 됩니다.

올바른 사랑은 사랑 스스로가 주고, 사랑 스스로가 받으며, 사랑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하고, 사랑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고 성결하며, 존경스럽고, 헌신의 대상이 됩니다.

기타를 배울 때도 처음에는 서툽니다. 격투기도 처음에는 어설픕니다. 사랑도 처음에는 낯설고 부족합니다. 마음을 열고 일체를 맞이하고 취사선택해서 정리하면서 사랑의 에너지가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놓아두어야 합니다.

흐르면 결국은 채워집니다. 사랑의 본질을 아는 것을 영적인 삶, 내면의 완성이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