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담스님

내 나이 이순(耳順). 한 갑자를 마무리하고 다시 한 생을 시작하는 문턱에 섰다. 수행자로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니, 아직도 묻고 또 물어야 할 것이 많다. 무엇을 더 얻겠다는 마음보다, 무엇을 내려놓아야 하는지를 자주 생각하게 된다.

그런 즈음, 꿈에서 달라이 라마를 만났다. "나를 만나러 오라"는 말 한마디였다. 설명도, 조건도 없었다. 다만 그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단순한 몽상이 아니라, 지금 이 시점에 다시 서원을 점검하라는 부름으로 받아들였다.

인도로 가야겠다는 생각은 그렇게 시작됐다. 하지만 길은 곧장 열리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세계불교교황청장이자 대한불교전통조계종 종정예하이신 석능인대승통께서 네팔에서부터 인연을 풀어가 보라는 말씀을 주셨다.

그 말씀은 구법(求法)의 여정에 나침반이 되었다. 이에 네팔에서 추진되는 친견의 인연을 따르기로 했고, 그 첫걸음으로 네팔 순례에 올랐다.

이번 여정은 석능인대승통을 비롯해 대한불교조계종 보명사 회주 원명대종사, 성법스님 등 한국 불교의 큰스님들과 함께하는 1박 3일의 짧지만 강렬한 일정이었다.

빠듯한 일정이었지만 그 의미는 각별했다. 네팔 룸비니 현지의 '세계불교교황청 퀸마하라니 사찰'을 중심으로, 향후 10년간의 운영 청사진을 확정하는 중차대한 불사(佛事)의 첫걸음을 내딛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히말라야 전경


지난 10일, 인천공항을 이륙해 광저우를 거쳐 카트만두로 향하는 길은 녹록지 않았다. 기류에 흔들리는 낡은 비행기는 마치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버스 같았다. 하지만 차창 밖으로 끝없이 펼쳐진 운해(雲海)는 구법을 향한 우리의 마음처럼 장엄했다.

기내에서 우연히 마주 앉은 38세 네팔 청년과의 대화는 이번 순례의 뜻밖의 소득이었다. 한국에서 13년간 노동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그는 "사업 실패의 아픔을 거울삼아 1년여를 신중히 준비해 다시 도전하겠다"고 했다.

흔들리는 기체 안에서 들은 청년의 담담한 포부는 수행의 길도 인생의 길도 서두를수록 넘어지기 쉽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일깨웠다.

현지 시각 밤 10시 30분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세계불교승가재단 선재 람살 대표회장이 직접 마중을 나왔고, 겔루 라마 스님은 환영의 카타를 걸어주었다.

예약된 차량으로 이동한 숙소는 고풍스럽고 조용한 5성급 호텔이었다. 하루를 돌아보니 정신없이 움직인 여정이었고, 새벽 5시 기상을 앞두고 짧은 휴식을 취했다.

이번 순례는 관광도, 의전도 아닌 서원의 확인이었다.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다시 걸어야 할 방향만큼은 분명해지고 있었다.

왼쪽부터 겔루 라마 스님, 곡담스님, 원명대종사, 석능인대승통, 성법스님, 선재 람살 세계불교승가재단 대표회장


이튿날 새벽, 카트만두 공항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바이라하와의 고타마 붓다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비행기 오른편 창가 너머로 히말라야 설산이 길게 펼쳐졌다. 말없이 바라보는 그 풍경만으로도 이번 순례의 의미는 충분했다.

퀸마하라니 사찰에 도착하니 이미 네팔 스님들이 먼저 와 계셨다. 법당에서는 대승정 수여식이 봉행됐다. 성법 스님과 국내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한 스님들을 대신해 세 분이 룸비니불교협회 회장 반테 스님으로부터 대승정의 법계를 품수받았다. 이어 준비해 간 보시금과 선물을 전하며 불교 교류의 인연을 나눴다.


사찰 2층 산신각에서 산신 소불 점안식도 봉행했다. 시간이 넉넉지 않아 정성을 다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지만, 마음만큼은 온전히 담아 올렸다.

이후 부처님 탄생지 룸비니로 향했다. 차로 갈 수 있는 곳까지 간 뒤, 신발을 벗고 맨발로 성역 안으로 들어갔다. 땅의 감촉이 그대로 발바닥에 전해졌다. '석가모니불' 정근을 염송하며 마야데비 사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부처님께서 탄생하시고 일곱 걸음을 내디뎠다는 자리, 그 발자국이 남아 있는 돌 앞에서 삼배를 올리고 광명진언을 염송했다. 이곳이야말로 모든 불교가 시작된 자리라는 사실이 새삼 가슴에 와닿았다.


룸비니는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성지다. 마야데비 사원과 아쇼카왕 석주, 수많은 승원과 탑 유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사원을 나와 보리수에 룸따를 매달고, 이번 순례의 인연을 사진으로 남겼다.

성지 입구에서는 소원 등불을 밝혔다. 이번 여정에 여비를 보태준 불자들을 떠올리며 스무 개의 등불을 켰다. 그분들의 안녕과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발원했다.

그러나 성지를 벗어나자 전혀 다른 현실의 네팔이 눈앞에 펼쳐졌다. 아이를 안고 동냥하는 어머니들, 손을 내밀며 따라오는 아이들.

준비한 보시금을 모두 나누어 주었지만 끝없이 이어지는 손길 앞에서 마음은 무거워졌다. 불교가 살아 숨 쉬는 땅에서, 불교가 감당해야 할 과제를 또렷이 마주한 순간이었다.


이후 퀸마하라니 사찰로 돌아와 게스트하우스 개보수와 향후 운영 구상에 대해 논의했다. 이곳이 단순한 사찰을 넘어, 전 세계 순례객이 머물며 수행과 교류가 공존하는 불교 문화의 거점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원력이 오갔다.

특히 원명대종사와 현지 관계자들은 이를 위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논의하며, 수행과 교류가 공존하는 미래를 그렸다.

네팔에서의 여정을 마치고 귀국행 비행기에 오르며 다시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지금,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제대로 걷고 있는가. 그 물음 하나를 가슴에 품고 돌아온 것만으로도, 이번 1박 3일의 순례는 충분한 공덕이 되었다고 믿는다.

네팔 룸비니에서 시작된 이 새로운 갑자의 여정이 어디로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방향만큼은 분명해졌다. 수행자는 늘 그 질문 위에서 다시 길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