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 청원사 대웅전, 보물 됐다…임진왜란 전화(戰火) 피한 15세기 법당

안성 청원사 대웅전. 사진=국가유산청

경기도 안성의 천년 고찰 청원사(淸源寺) 도량에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대웅전이 그 역사적·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의 보물이 됐다.

청원사 대웅전은 임진왜란 이전인 15세기에 건립되어 전란의 화마를 피한 몇 안 되는 법당이자, 고려 말에서 조선 초로 넘어가는 건축 양식의 변화를 한 몸에 보여주는 귀한 성보(聖寶)다.

국가유산청은 23일 안성 청원사 대웅전을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이번 지정은 단순한 건축물의 등재를 넘어, 한국 불교 건축의 미싱 링크(Missing Link)를 잇는 중요한 학술적 성과로 평가받는다.

청원사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아한 맞배지붕 건물이다.

정확한 창건 연대는 기록되지 않았으나, 1854년(철종 5년) 중수 당시 발견된 상량문과 최근 실시된 목재 연륜 연대 분석을 종합해 볼 때 15세기 중엽, 즉 조선 전기 성종~중종 연간의 부재가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임진왜란(1592년) 이전에 세워진 불전이 극히 드문 한국 건축사에서 그 희소성만으로도 보물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무엇보다 이번 지정에서 주목받은 것은 청원사 대웅전만이 가진 파격적인 건축 미학이다.

통상적인 법당이 통일된 공포(지붕 하중을 받치는 부재) 양식을 따르는 것과 달리, 이 건물은 전면과 후면이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건물의 앞면은 화려하고 장중한 다포계(기둥 사이에도 공포를 배치) 양식을, 뒷면은 간결하고 실용적인 익공계(새 날개 모양의 부재 사용) 양식을 과감히 혼용했다.

이는 고려 시대의 주심포 양식이 조선의 익공 양식으로 변화해 가는 과도기적 단계를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다.

학계에서는 당시 소규모 사찰이었던 청원사가 불사(佛事) 과정에서 겪었을 경제적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전면의 장엄함은 살리되 후면의 실용성을 택한 옛 장인의 지혜로운 타협이자 독창적 해법으로 해석하고 있다.

특히 뒷면에 사용된 출목 익공계의 연봉(연꽃 봉우리) 장식은 동시대 건물 중 유일한 사례로, 훗날 17세기 이후 조선 후기 건축 장식의 유행을 예고하는 선구적 양식으로 꼽힌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안성 청원사 대웅전은 16세기 한국 건축의 의장과 구성을 한눈에 보여주는 타임캡슐과 같다"며 "앞으로 조계종 및 해당 지자체와 긴밀히 협력해 이 귀한 성보가 체계적으로 보존·관리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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