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5일 계불교도우의회(WFB) 창립 75주년 제31차 총회가 열리고 있다
기독교와 이슬람 공동체가 강력한 글로벌 미디어 네트워크와 정교한 디지털 전략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해 온 것과 달리, 불교의 목소리는 여전히 분산되고 미약하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세계 불교계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평화와 상호의존, 자비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품고 있음에도, 불교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그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세계불교도우의회(WFB)가 창립 75주년을 맞아 'AI시대의 지혜와 행복의 함양: 불교적 미래 비전'을 주제로 제31차 총회 및 기념식을 열며 국제 불교 네트워크의 새로운 비전을 모색했다.
12월 5~7일 태국 방콕에서 진행된 이번 총회에는 한국·중국·일본·스리랑카·네팔 등 20여 개 국가에서 200여명의 대표들이 모여 AI 시대의 불교 역할과 국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 죠티 부회장, WFB 혁신 전략 제안
이번 총회 폐막일, 네팔의 저명한 기업가이자 WFB 부회장인 파드마 죠티(Padma Jyoti)는 75년 역사를 지닌 이 국제 불교기구를 재활성화하기 위한 포괄적인 혁신 전략을 공식 제안했다.
방콕의 바즈라부디(Vajirabudh) 대학에서 발표된 이 연설은, WFB가 오랜 전통과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불교를 충분히 대표하지 못하고 있다는 내부 비판에 대한 응답이었다.
전 세계에서 모인 대표단 앞에서 죠티 부회장은 "WFB는 더 이상 의례적 기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며 "현대 불교계에서 존재 이유를 되찾고, 실질적인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한 변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가 제시한 전략은 선언에 그치지 않는다. 올해 3월부터 수개월에 걸쳐 진행된 성찰과 협의의 결과물이다.
WFB는 '회의를 위한 회의'의 한계를 인식하고, 네팔의 사회적 기업가이자 불교 지도자인 아닐 치트라카르에게 논의 과정을 구조화해 줄 것을 요청했다.
실무 경험이 풍부한 임원과 전·현직 집행위원, 부회장, 상임위원회 위원장 등을 대상으로 두 유형의 설문조사를 실시했으며, 지난해 9월 일본 오사카 시텐노지(사천왕사)에서 열린 제104차 집행위원회 회의에서는 그룹 토론과 개별 면담을 병행했다.
이러한 의견을 종합해 작성된 최종 보고서는 75주년 기념 총회에서 채택되기에 앞서 지도부 전반에 공유됐으며, 폭넓은 공감 속에 공식 안건으로 상정됐다.
네팔 대표 기업가 파드마 죠티 WFB 부회장이 개혁안을 발표하고 있다
# 혁신을 위한 다섯 가지 핵심 요소
WFB 혁신 전략은 다섯 가지 핵심 목표로 정리된다.
첫째, 출가와 재가를 아우르는 전 세계 불교도를 위한 신뢰할 수 있는 통합된 목소리가 되는 것이다.
둘째, 기존 회원의 참여를 활성화하고, 특히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신규 회원을 유치하는 한편, 상임위원회와 지역 부회장의 역할을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것이다.
셋째는 콘텐츠의 전환이다. 지속가능성, 기술, 갈등 해결, 평화 등 현대 사회가 직면한 주요 의제에 대해 불교적 관점에서 해법을 제시함으로써 '현대 생활을 위한 불교적 길'을 분명히 하겠다는 구상이다.
넷째는 디지털 플랫폼을 적극 활용해 젊은 세대와의 소통을 확대하고 조직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를 뒷받침할 충분한 인적·재정적 역량을 갖춘 전문 사무국 구축이 제시됐다.
죠티 부회장은 "세계불교도우의회는 사회가 부처님의 가르침이 지향하는 방향을 받아들이도록 돕는 촉매이자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며 "전 세계 불교도를 하나로 묶고 협력을 증진하며, 국제 사회에서 존경받는 불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 10년 로드맵…회원 개혁에서 '불교 전략 계획'까지
이 전략은 단기·중기·장기의 단계별 로드맵으로 구체화됐다.
우선 향후 2년 안에 회원 프로필과 회비 체계를 정비해, '회원 명단은 방대하지만 회원에 대한 정보는 부족하다'는 구조적 문제를 개선할 방침이다.
모든 직책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해 혼선과 이해 충돌을 최소화하고, 상임위원회가 지역 이해를 넘어 세계 불교 전체의 이익을 반영하는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명확한 지침과 플랫폼을 제공한다.
재정위원회는 본부와 각 위원회 활동을 포괄하는 통합 연간 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5년 차에는 통합 행사 일정과 회원 오리엔테이션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WFB의 가치와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재정 및 파트너십 가이드라인을 확립한다.
주요 파트너와 기부자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관계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글로벌 활동을 추적하며 모범 사례를 공유하는 전담팀도 운영할 예정이다.
10년 차에는 디지털 및 소셜 미디어를 통한 소통을 본격적으로 강화하고, WFB의 가치 제안과 사회적 영향력을 체계화한 전략적 '불교 전략 계획'을 수립한다.
아울러 글로벌 팀의 지원을 받는 펠로우십 프로그램과 관련 서비스 개발에도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 청년과 디지털, 그리고 100주년을 향해
죠티 부회장의 연설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된 키워드는 '확대'와 '청년 참여'였다.
그는 "우리의 글로벌 네트워크는 실제로 강화되고 있는가, 회원들은 WFB에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 우리는 오늘날 불교와 불교도가 직면한 문제를 제대로 다루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향후 평가의 기준을 제시했다.
청년 참여는 회원 확대와 디지털 전환의 핵심 축으로 부각됐다.
이 전략은 새로운 세대, 곧 우리의 자녀와 손주들의 사고방식이 과거와 크게 달라졌음을 인정하며, 이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콘텐츠와 플랫폼 개발을 분명한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세계불교대학을 지속적인 연구와 피드백을 담당하는 싱크탱크로 활용하자는 제안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왔다.
기념촬영을 위한 참석이 아닌 실질적인 활동을 위한 참여가 중요하다는 죠티 부회장의 연설은 설득력이 있었다
연설의 말미에서 죠티 부회장은 이 10년 계획을 '거대한 선언'이 아닌 '작지만 신중한 발걸음의 연속'으로 규정했다.
그는 "이 계획이 충실히 이행된다면 WFB 회원들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며, 적극적인 회원 기반은 조직을 강화하고 자원 동원을 한층 수월하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참석자들에게 이 전략을 채택하고 차기 지도부와 사무국에 추진 권한을 부여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제 창립 100주년이라는 다음 이정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며 "오늘의 선택이, 더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세계불교도우의회로서 100주년을 맞이하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연설은 깊은 침묵과 이어진 박수 속에 마무리됐으며, 변화의 필요성에 대한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이제 대표단이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는 이 시점에서 남은 과제는 하나다. 존경받지만 노후화된 국제기구를, 21세기 세계 불교를 대변하는 민첩하고 영향력 있는 플랫폼으로 실제로 전환시키는 실행의 문제다.
글·사진=보검 스님 ㅣ 세계불교 네트워크 코리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