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양의 진주라 불리던 스리랑카는 여전히 깊은 신음 속에 있다.

4년 전인 2022년, 국가 부도(Default) 선언과 함께 대통령이 해외로 도피하고, 성난 군중이 대통령궁을 점거했던 '아라갈라야(Aragalaya·투쟁)'의 상흔은 아직 아물지 않았다.

경제는 서서히 회복세라지만, 더 심각한 것은 '무너진 신심(信心)'이다.

지난 수십 년간 "싱할라 불교도가 이 땅의 주인"이라며 배타적 민족주의를 선동했던 정치 승려들은 그들이 옹호했던 정권이 나라를 파산시키자 설 자리를 잃었다.

가난과 굶주림 앞에서는 '불교 수호'라는 구호도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었다.

# '불국토'의 역설…자비가 사라진 자리에 남은 건 파산

스리랑카 불교의 비극은 2019년 4월 '부활절 테러' 이후 극대화됐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로 수백 명이 희생되자, 공포에 질린 대중은 '강한 불교 국가'를 외치는 강경파 지도자(고타바야 라자팍사)를 선택했다.

당시 승가(僧伽)는 그를 '현대판 두투게무누 왕(스리랑카를 통일한 고대 왕)'이라 추앙하며 당선을 도왔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혹했다. 견제받지 않는 불교 민족주의 권력은 부패와 무능으로 치달았고, 결국 2022년 사상 초유의 국가 부도를 맞았다.

불교가 타 종교(무슬림, 기독교)를 배척하고 민족주의에 매몰돼 정치 권력의 '보증인' 노릇을 하는 사이, 정작 국민들의 삶은 지옥으로 떨어졌다.

"나라는 망해도 불교는 지킨다"던 그들의 논리는, "나라가 망하니 불교도 설 곳이 없다"는 냉혹한 현실 앞에 처참히 부서졌다.

# 존경받던 스님, 거리에서 야유받다

콜롬보의 한 원로 스님은 "2022년 시위 당시, 가사를 입은 승려들이 거리에서 시민들에게 야유를 받거나 승차 거부를 당하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고 회고했다.

과거 스리랑카에서 승려는 신성불가침의 존재였다. 그러나 승려들이 부패한 정치인들과 결탁해 호의호식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반(反)승가 정서'가 확산된 것이다.

특히 '보두 발라 세나(BBS)' 등 극단적 불교 단체들이 주도했던 혐오 선동은 이제 젊은 세대에게 '낡고 부끄러운 구악(舊惡)'으로 취급받고 있다.

2024년 대선에서 좌파 성향의 새 정부가 들어선 것 역시, 불교 민족주의에 기댄 기성 정치에 대한 심판이었다.

권력에 취해 자정 능력을 상실한 종교가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서글픈 자화상이다.

# 다수자의 오만, 그 끝은 공멸(共滅)

스리랑카 헌법은 여전히 불교에 '최우선 지위'를 부여한다. 하지만 2026년의 현실은 법전과 다르다.

식량난과 의약품 부족이라는 생존의 위기 앞에서 종교적 우월감은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했다.

이제야 스리랑카 불교계 내부에서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우리가 타밀족과 무슬림을 적으로 돌리고 우리끼리의 성벽을 쌓는 동안, 정작 부처님의 가르침인 '연기(緣起)'와 '공존'을 잊었다"는 뼈아픈 반성이다.

다수 종교가 소수를 억압하는 도구로 쓰일 때, 그 사회는 결국 내부에서부터 썩어 문드러진다는 것을 '국가 부도'라는 비싼 수업료를 내고 깨달은 셈이다.

불교는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받는 뭇 생명을 위해 존재한다.

스리랑카가 보여준 반면교사(反面敎師)는 명확하다. 권력과 결탁한 종교는 반드시 권력과 함께 몰락한다는 것이다.

2026년, 한국 불교가 가야 할 길은 권력의 옆자리가 아니라, 가장 낮고 아픈 중생의 곁이어야 한다.